소년으로 변장한 천사
柳溪 권성길
대학에 재직 중인 어느 교수가 매일 전철을 타고
서울 혜화역에 내립니다.
교수가 나가는 전철역 출구에는 언제나 중년의 걸인이
앉아 있습니다. 더운 여름 그날도 그 걸인은 땀을 흘리며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수없이 아이의 어깨를 치고 갔습니다.
아이는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계속 그 걸인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아이가 신기해서 교수 역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왜 저러나' 하며 아이를 관찰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있더니 아이가 계단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만 뒤돌아보았습니다.
교수는 쫓아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그 아저씨를 봤어? 불쌍해서 봤어?"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날씨가 참 더운데요, 그 아저씨 앞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요"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계속 말했습니다.
"누가 그 아저씨한테 돈을 주나 안 주나 봤어요.
제가 돈이 하나도 없어서요."
빈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누군가 다른 사람이라도
그 아저씨를 돕기를 바라면서 한참을 지켜본 아이…….
아이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교수는 생각에 깊이 잠겼습니다.
연구실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액자의 문구가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파리의 고서점에 붙어 있는 글귀입니다.
"낯선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수도 있으니까요."
(20180726)